White witch In Pine forest
211003 우라나이 SAYS
와쿠친과 우라나이
No.35.10 by Nonc
ㅇ의 마녀 ‘우라나이’의 원래 이름은 ‘와쿠친'이었다. 옛 져먼땅에서는 백신을 왁진이라고 발음했는데, 그것이 실크로드를 다니는 파견 의사들 덕에 동방대륙으로 건너 들어와 에도 열도까지 흘러들어갔다. 에도 사람들은 받침 발음을 잘 못 해, 외래어가 정착할 때 발음이 쪼개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와쿠친도 마찬가지로 왁진이란 발음이 쪼개져 늘어난 모습이다. ㅇ의 마녀가 태어났을 때, 점쟁이 노파가 마력이 빈약하여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의 마력을 나눠주고 떠났다. 당시에 에도 열도로 무역을 하던 와쿠친의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오래 살기 위해, 에도 열도의 전통에 따라 아이의 이름을 병마를 물리치는 것들로 하려고 골똘히 고민하다가 왁진의 에도식 발음인 ‘와쿠친’이라고 붙였다.
와쿠친은 생각보다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점쟁이 노파가 고비라고 했던 열네 살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 마녀 학교생활에도 제법 적응을 잘 했다. 빼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몰입했다. 그중에 점성술과 예지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갓난 아기 때 점쟁이 노파의 마력을 전해 받았으니, 같은 방면에서 재능을 꽃피운 것이다. 하지만 와쿠친은 그 사실을 몰랐다.
어느 날 와쿠친이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 남자 같다며 남자 마녀들에게 놀림을 당한 것을 계기로, 생일만 되면 이름을 바꿔달라고 아버지한테 때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해를 떼를 쓰다가 안 들어주니까, 제풀에 지쳐버려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마녀들의 이름은 그냥 달리 부른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마녀들은 이름에 고유의 마력이 깃들기 때문에 태어날 때 자신의 운명에 이름을 새기는 특별한 의식을 거행한다. 그래서 마녀들이 이름을 바꾸는 경우는 정말 특수한 일이 아닌 이상 잘 없으며, 바꾸려 해도 혈족 고위 마녀 셋을 동원해야 하는 아주 번거로운 의식을 진행해야 한다.
쥐 죽은 듯 보였던 와쿠친의 집요함이 결국 터져버렸다. 그녀는 남몰래 거인족의 언어로 쓰인 평행우주에 관한 금지된 도서를 입수했고, 이름을 바꿀 수 없다면 다른 우주에 있는 자신과 교신을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문에 거인족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고, 평행우주 마법을 위해 요정의 가루로 만든 특수한 거울도 구해왔다. 모두가 잠이 들고 마녀들도 잠이 드는 새벽 한가운데, 와쿠친 만은 잠을 잊은 채 집요한 연구를 진행했다. 수업 시간만 되면 조는 그녀를 보다 못 한 ㅎ의 마녀 하르모니아가 ‘잠을 잘라내는 가위’를 선물했을 정도다. 그렇게 그녀의 뒷 공부가 차곡차곡 쌓일 무렵, 와쿠친은 거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마녀 학교 안쪽에 있는 물의 정원에 이 세계와 연결하는 차원의 수신장치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와쿠친의 계획은 아주 조용히 실행되었다. 물가에 둔 와쿠친의 거울에서 한줄기 검은빛이 나와 그 속에서 녹으로 된 거대한 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이 산란하면서 녹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와쿠친은 다른 우주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수면이 서서히 메마르기 시작하더니, 녹문이 갑자기 쾅 닫히고 그 충격에 와쿠친은 튕구러져 나가 버렸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대장 마녀들이 경비를 돌다가 쓰러진 와쿠친을 발견하고 병실로 옮겼으나, 와쿠친의 의식은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와쿠친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마녀 학교를 졸업하고 교정을 떠나는 데도 와쿠친의 의식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에 갓난아기 때에 와쿠친에 마력을 나눠주고 사라져 버렸다는 점쟁이 노파가 마녀 학교를 방문했다. 그녀는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곧장 와쿠친의 상태를 보러 갔다. 그리고 자신이 북쪽 빙하 대륙에서 구해온 붉은 시약을 허리춤에 차고 있던 은장도에 바르더니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교장 마녀를 통해 학교 내에 있는 ㅇ일족의 고위 마녀 셋을 불렀다.
“이름을 바꾸는 의식을 거행해야 합니다.
ㅇ 일족의 의지를 물어, 그녀에 걸맞은 새로운 이름을 내려주세요.”
ㅇ일족의 고위 마녀들은 와쿠친의 부모도 없는 자리에서 자신들이 마음대로 이름을 내려도 괜찮을지 걱정했다. 잠시간 고민 끝에 집에서 칩거 중인 와쿠친의 아버지에게 텔레파시 마법으로 연락을 취했다. 몇 해간 의식이 없는 와쿠친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대단한 거상이었던 와쿠친의 아버지는 본인의 사업을 다 정리하고 마녀 학교 근처에다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와쿠친의 아버지는 놀라운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왔고, 점쟁이 노파에게 ‘이름을 바꿔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면 의식이 돌아올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와쿠친의 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을 터뜨려 흘렸다. 그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우라나이"
‘우라나이'는 에도 열도에서 점쟁이 혹은 예언자를 부르는 말이다. 갓난 아기 때에도 지금도 친 딸을 살리기 위해 애써주는 점쟁이 노파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이번에도 그가 오랫동안 교류해왔던 에도 열도의 말을 빌려서 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바꾸는 의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의식이 끝난지 반나절이 지나자 와쿠친은 의식을 되찾았다. 그렇게 와쿠친은 우라나이가 되었다.
우라나이가 된 와쿠친은 친구들이 떠난 교정에 남아, 자신이 못다 한 공부를 마치고 졸업했다. 하지만 그녀는 오랜 기간을 의식이 없는 채로 마녀 학교의 생명 유지 마법구 안에서 누워 있어서 그런지, 졸업을 하고 나서도 마녀 학교를 떠날 맘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점쟁이 노파가 일부로 전하지 않은 말이 있었는데, 평행 우주 마법에 손을 댄 대가로 매달 그믐달이 뜰 무렵 다른 우주의 의식이 전이된다는 것이었다. 우라나이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의식 이탈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이 때문에 섣불리 마녀 학교를 떠날 수도 없었다.
연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초창기에는 랜덤하게 다른 의식이 흘러들어 왔기 때문에, 우라나이는 마녀 학교 지하 깊은 곳에 있는 감옥에 자신을 가뒀다. 그렇게 몇 해간의 지난한 연구 끝에 어느 정도 결실을 얻게 되었고, 이제 우라나이는 자신의 연구실 테이블에 앉아서, 흘러들어오는 다른 의식을 마법의 양피지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제어하게 되었다. 물론 그 시간만큼은 마법을 행하는 그녀를 아무도 건드려선 안 되기 때문에,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필수였다. 그렇게 우라나이는 다른 우주의 자신이 보내오는 의식을 텍스트로 엮어서 책을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평행 우주에 관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우라나이의 친구들이 졸업하여 학교를 떠난 지도 오래전 일이 되었다. 우라나이가 의식을 잃고 잠들어 있다가, 다시 회복하고 또 연구를 하는 동안, 그녀와 함께 교정에 남은 마녀 학교 동기 ㅎ의 마녀 하르모니아가 교장 마녀가 되었다. 우라나이 또한 지난날 자신을 의식의 저편으로 보내버릴 뻔했던 요정의 가루 거울로 여전히 학교의 꼭대기 다락방에서 다른 우주를 엿보고 있다.
211004 바리 SAYS
바리
No.35.11 by Nonc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편에 의하면, 바리공주의 온전한 원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주상금마마와 중전부인이 혼인하게 되었다. 천하궁 다지박사에게 물으니 혼사를 서두르지 말라는 금기를 내리는데 이 금기를 어기면서 둘은 혼인한다. 이로 말미암아 바리공주의 부모는 거푸 딸을 낳게 되었으며 일곱 번째 역시 딸을 낳는다. 그런데 일곱 번째 딸은 마지막에도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을 받는다. 이렇게 버려진 공주는 바리공주라는 이름을 얻고 비리공덕할아비와 비리공덕할미에게 구조되어 키워진다. 한편 바리공주의 부모는 죽을병에 걸리는데, 자신들에게 필요한 약이 무장승이 있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양유수와 꽃임을 알게 된다. 부왕은 여섯 공주에게 서천서역국에 가서 양유수를 구해 오라고 하는데, 여섯 공주는 갖은 핑계를 대면서 가지 않겠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버린 일곱 번째 공주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 버려진 공주를 찾는다. 마침내 바리공주와 주상금마마 내외는 서로 재회한다. 바리공주는 남장을 하고 부모를 살릴 수 있는 약수를 구하기 위해 저승 여행을 떠난다.
다음 내용이 더 있음에도 불구하고 닥터 W는 여기에서 읽기를 멈췄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바리공주가 남장을 하였다’는 것.
ㅂ의 마녀의 이름은 오랜 기간 마땅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닥터 W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것이 바로 바리공주 설화였다. 그가 처음에 ‘바리'에 주목한 것은 발음의 간결함 때문인데, 그의 연구주제 ‘하얀 마녀 프로젝트'를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선, 그가 속한 문화의 원형을 대표할 만한 ‘하얀 마녀스러운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다가 휙 떠오른 ‘바리'야말로 어느 나라 사람이건 발음하기 쉽고, 또 살짝 마녀 이름 같기도 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심지어 모음가의 발음 스펙트럼이 약한 일본 사람들에게도 ‘바리'는 어필하기 부족함 없는 친숙한 발음이겠다. 그렇게 무턱대고 발음만 가지고, 한국의 대표 하얀 마녀를 ‘바리'로 정해버린 닥터 W는 연구 발표회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부랴부랴 바리공주 설화를 읽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남장'이라는 이야기에 덜컥 걸려버린 것이다.
닥터 W가 하얀 마녀를 탐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시도하는 설정은 ‘여장'이다. 그는 역사 속에 등장하는 배척받는 존재로서 ‘마녀'가 본래 가진 추상적 의미와는 달리,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이 성별 중립을 지키지 못 한 채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고착화한 관념의 얼개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닥터 W 자신이 여성 복식을 입는 것으로 균형추를 맞추려 하였다. 그런 그의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접근 방식에, 바리공주가 남장을 했었다는 것은 완전한 대척점에 서있다.
죽을 병에 걸린 부모가 자신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해 약을 구하러 저승 여행을 해야만 하는 바리공주, 하지만 미루다가 닥친 일감을 앞두었을 때에 허둥지둥 대는 것처럼, 바리공주가 왜 남장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 닥터 W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저승같이 험난한 곳을 여행하기 위해선, 여성 복식보다 남장이 더 편했을 것이다.’, ‘저승문을 통과할 때, 어떤 조건이 필요했나?’ 와 같은 게으른 추측만 했을 뿐이다.
바리공주가 남장을 했다는 사실이 그를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바로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닥터 W 본인이 앞서 말한 것처럼 남성인데, 남장을 한 여인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궁여지책 끝에 닥터 W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또 한 번 금단의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브라자. 앞서 ㅋ의 마녀 ‘키르케'를 묘사할 때, 처음 시도했던 바로 그 브래지어이다. 키르케를 묘사하기 전까지 닥터 W는 여성 복식을 그저 패션의 일부로만 생각했었다. 치마는 생각보다 편했고, 심지어 통풍도 잘 되었다. 그가 또 자기 취향껏 고른 옷 들이었기 때문에, 과하게 블링블링하거나, 샤방샤방하거나, 큐티 큐티하지 않았다. 또한 묘한 중성적 느낌을 자아내는 옷들을 본능적으로 골라버렸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의 패션의 연장선 정도로 생각했으리라. 그런데 밤의 마녀 ‘키르케'를 묘사하면서 걸친 브래지어를 통해, 닥터 W는 그제서야 ‘아 이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라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일전에 닥터 W는 외국에서 실행한 한 사회 실험을 눈여겨보았다. 그것은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왜 남자들은 지하철에서 쩍벌남이 될까?”가 주제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 여성 참가자를 모집했고, 그들에게 남성 성기 모형을 바지 혹은 치마 안에 장착하게 했다. 결과는 심플하게 납득되었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의 참가자가 그 때문에 불편해서 자동적으로 다리를 벌리고 앉게 되었고, 그 순간 ‘아하, 납득 !’ 하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남성에게 없는 것을 가리고 지키기 위한 도구를 처음 겪게 된 닥터 W는, 바로 그때 그 느낌을 ㅂ의 마녀 ‘바리'에도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가 남장을 한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른 또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넥타이'였다. 요즘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패션의 일환으로 어디서든 넥타이가 활용되는 데, 전통적으로 넥타이는 남성의 영역이었다. 정신분석학에선 이를 남자적 강박으로 풀이한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에 대해선 더 깊이 알 일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한다. 사실 브래지어가 여성에게 필연적 형태의 도구임에 반해, 넥타이는 그것이 남성의 전유물이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넥타이가 가진 강력한 상징적 이미지 때문에, 닥터 W는 어쩔 수 없이 꽉끼는 잿빛 여성 블라우스에 목을 꽉 조이는 넥타이를 하고, 그 안에는 또 몸에 꽉 밀착된 브라자를 차고, 필름 기록을 위하여 숲 건너편에 있는 산으로 들어갔다. 장화로 발목 위까지 꽉 가린 채로. 거기에 부가적으로 묘한 질감을 주기 위해 미리 장만해 온 빨간색 선글라스를 끼게 되었는데, 원래 시력이 안 좋은 닥터 W가 선글라스를 끼기 위해서는 콘택트렌즈를 꽉 껴야만 했다. 이 모든 복식 준비 과정이 그에게는 큰 고행이었는데, 심지어 날씨는 초가을이라기엔 적당히 후텁하고, 심지어 그 상태로 산에 올라야 했으니, 그야말로 생고생이 따로 없었다. 산에서 꽉 조이는 것들에 감긴 채 흠뻑 땀에 젖어서 돌아온 후, 닥터 W는 넋이 나간 채로 조용히 한 마디 툭 뱉었다.
“땀에 파묻히기 전에 빨리 탈 브라 해야겠다.”
한편, 닥터 W의 모자란 지식과 달리, 남장을 한 바리공주는 저승을 여행하면서, ‘귀신이냐, 사람이냐!, 남자냐 여자냐, 와 같은 질문에 시달려야 했으니, 바리공주야말로 정말로 하얀 마녀의 진정한 의미에 딱 떨어지는 인물이 아닌가. 소 뒷걸음질에 쥐잡는 격으로 얻어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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