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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witch In Pine forest

210930  파이 SAYS

<파이> _210930 ㅍ의 마녀일기Nonc
00:00 / 13:41

파이

No.35.7 by Nonc




 

   파이는 광기의 마녀다. 그의 정식 명칭은 초록 도마뱀의 마녀인데, 어느 날 그가 애지중지하는 꼬리가 잘리고 나서부터 미쳐버렸다고 한다. 그의 행동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그가 얼마나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바지 위에 불현듯 치마를 입더니, 또 그 위에 스타킹을 신는다. 그러다가 맨발인 줄 알고 더러운 흙바닥을 막 밟고 다닌다. 그 상태로 슬리퍼를 집어 신는 것 같더니, 별안간 화장실 옆에 놓인 장화로 후다닥 달려가서, 왼발에 장화를 신는다. 그는 꼭 신발 한 켤레를 제대로 신는 법이 없다. 다른 한쪽은 또 다른 신발을 걸친다. 스타킹도 신고 치마도 입고 요상한 복장으로 돌아다니지만, 그는 분명히 남자다. 놀라운 건, 그는 그 스스로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믿는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는 원래 남자들이 수염이 나서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미모를 가꾸기 위해 화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수염을 밀고 화장을 하면 될 것이지, 위 수염을 밀다 만 채로 거울에 입술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한다. 그것도 윗 입술만 바른다. 그가 미쳤건 어느 세계에서 왔건 생물학적으로 남자임이 분명한데, 어디서 옷은 잘도 주워와서 걸쳐 입는다. 

 

    그는 민들레를 좋아한다. 길가에 피어오른 노오란 민들레를 한 송이 꺾더니 좋다고 길길이 날뛴다. 그러다가 촬영을 위한 카메라를 보더니, 카메라 뒤에 민들레를 슥 꼽아놓고는, 민들레가 어딨냐고 사방팔방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노오란 민들레만큼 노오란 은행나뭇잎을 하나 주워들더니, “찾았다~” 하고는 발그레 웃는다. 그가 미치기 전에 대단한 소설가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미친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드는데, 어떤 이는 그가 꼬리가 잘려서 미쳤다기보다는, 소설을 쓰다가 너무 글이 안 풀리는 나머지, 금단의 주문 - 상상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 기억 회로가 마치 원주율 파이처럼 그다음이 무슨 숫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죽 늘어서 버렸다고 한다.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5028841971693993751058209749445처럼 말이다. 어느 날 그와 마녀 학교 동기였던 ㅅ의 마녀 ‘솔'이 그가 미치기 직전에 썼던 글을 그의 먼지구더기 서재에서 찾아냈다며 들고 찾아왔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잘라낸다는 것 - 아주 질긴 소세지

 

아주 질긴 소시지(Sausage)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잘라야 한다. 칼이 무딘 건지, 힘이 달리는 건지, 아니면 소시지를 받치고 있는 접시가 부실한 건지 도무지 잘려나갈 생각을 안 한다. 칼이 소시지의 절반 되는 지점을 지나갔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여기서 힘을 더 주면 소시지로부터 칼이 미끄러져서 튕굴어 나가지 않을까?’

‘소시지가 뭘로 이루어졌었지. 야채에 돼지고기를 잘게 다져서, 체다치즈를 넣었던가?’ 

‘맛을 내기 위해 노란 향신료를 넣었다고 하는데, 입에 넣으면 굉장히 맛있겠지?’

‘그런데 배는 왜 이렇게 고픈 거야, 평상시 같으면 느끼해서 건드리지도 않았을 이 소시지를 주문해서 내가 자르고 있다니?’

 

아주 질긴 소시지(Sausage)가 있다.

나는 이것을 자르고 있다. 어젯밤에 SNS로 검색해서 찾아낸 이 동네 최고의 맛집에서 말이다. 비를 뚫고 강을 건너 버스를 타고 와 슬리퍼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이 자리에 앉아있다. 칼질을 하는데 어깨는 왜 이렇게 결린 건지, 쓸데없이 부실해 보이는 의자를 탓했다. 

‘네가 나를 잘 지탱해 줬으면, 뱃살 속에 감춰진 코어근육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힘을 짜내서, 부드러운 스냅으로 소시지를 자를 수 있었을 텐데.’

 

문득 어제저녁에 집사람과 함께 간 대형 마트에서 무심결에 앉아본 ‘의자 보조기'가 떠올랐다. 사실 그것도 ㅎㅅㅍ ㄱㄱ에서 봤을 때 탐냈던 만큼 탁월하지는 않았다. 골반이 틀어져서 엉덩이가 남들과 조금 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허리를 제대로 감싸고 받쳐주지 못 한 채, 엉뚱하게 허벅지에 더 힘을 주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이 소시지 하나를 자르려고 그 녀석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나이프를 톱질하듯이 빠르게 앞 뒤로 왔다 갔다 하는 건, 소시지를 금방 잘려나가게 하는데 효과적일지라도 품위가 떨어져 보여서 싫다. 어깨 근육에 쓸데없이 힘을 더 주는 것 또한 목과 승모근에 지장을 줄 것이다. 아~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라. 나는 이미 거북목 상태의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그깟 소시지를 자르고 있다.

  

 

아주 질긴 소시지(Sausage)를 자르고 있다.

아직도 잘리질 않는 소시지의 표면을 보니, 내가 알던 기름기 좔좔 흐르는 그것이 아니었다. 이 거친 듯 매끄러우며 역겨운 껍질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 이 소시지는 도대체 얼마나 길단 말인가? 나이프에서 시선을 옮겨 접시를 조망하니 세상에 무려 소시지가 1m는 족히 되는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길다. 내가 자르려는 소시지의 반대쪽 끝을 열심히 바라봤다. 굉장히 날카로운 송곳니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뱀이었다. 내가 자르는 이것이 소시지가 아니라 <어린 왕자>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커다란 보아 뱀인 것이다. 뱀을 자르고 있다니, 당연히 이런 구닥다리 나이프로는 도저히 잘리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접시 위에서 꿈틀꿈틀 움직인다. 아아.. 반대편 머리가 그 흉악한 송곳니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너무나 끔찍하고 무섭지만, 나에게 들린 것은 이 형편없는 칼밖에 없다. 웅크리고 있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즉시 과감하게 눈을 찔러 제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첫 일격은 바로 실패했다, 어찌나 빠른지 나이프를 쥐고 있는 손을 감고 올라와 순식간에 내 온몸을 똬리를 틀듯이 쥐어버렸다. 이대로 죽고 마는 것인가? 죽음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나를 환대하고 있었다니 좌절스럽구나. 그래도 이렇게 마감하기엔 그동안 쥐고 있던 나이프가 억울하니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나이프를 내려놓은 채 뱀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나는 네가 뱀인 줄 몰랐다.

뱀인 줄 알았으면 설마 무식하게 이 나이프를 들고 소시지인 것 마냥

너의 꼬리를 썰기 시작했겠냐?”         

 

뱀은 생각보다 영리한 녀석인 것 같았다. 약간의 급작스런 몸부림을 치더니, 이내 내 의중을 알았는지 힘을 풀기 시작했다. 덕분에 허리춤의 갈비뼈 두 개는 나간 것 같다. 근처에 용하다는 정형외과를 찾아가야겠다. 녀석은 내가 소시지인 줄 알고 절반이나 자른 건지 뭉겐건지 했던 꼬리 끝부분을 두고, 쉭하고 사라져버렸다.

도마뱀이었나?

 

소시지를 자르는 1초 063간의 일이었다. 


 

   중간 부분이 지워져 있어서, 다 읽을 수는 없었다. 단어도 몇 개 바뀌거나 훼손된 것 같다. ….

분명 미치기 직전에 쓴 글이라고 들었는데, 그냥 이 글만 봐도 미친 것 같다. 애당초 그는 미쳐있던 것이 아닌가? 아니, 미쳤다는 게 과연 어디부터란 말인가.  이 글을 읽는 나도 어쩌면 미쳤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영순 씨가 떠올랐다. 영순씨의 성은 박인데, 그녀와는 어느 작은 요양원에서 만났다.

 

   그녀는 요양원에 거주하지만, 별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 마을 촌장의 이름과 같아서, 나는 그녀에게 늘 촌장님 촌장님 하고 불렀다. 영순은 예순이 넘는 나이였는데, 요양원에서는 막내였다. 그녀는 굉장히 차분한 미인이었지만, 그녀가 하는 행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는 치매 이상의 어떠한 정신 질병을 앓고 있었다. 요양원에서 나의 역할은 그녀가 돌발 행동을 할 때에 잘 제어해서 다시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그 빼빼 마른 몸으로 어찌나 억세던지, 내가 몸으로 제압하려고 하면 그에 질세라 거칠게 팔을 휘젓는다. 그래서 나는 영순과 다른 방식으로 친해지기로 시작했다. 간식시간에 막대 과자를 가져다주면, 그것이 연필인 줄 알고 휴지를 주섬주섬 펴기 시작하더니, 그걸로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막대 과자가 휴지에 문대져서 가루가 되었을 때, 그제서야 그것을 과자 가루로 인식했는지 손끝으로 주워서 먹기 시작한다. 요양원 할머니들의 간단한 운동 시간에 나는 영순을 담당했는데, 초록색 탱탱볼과 핑크색 탱탱볼을 가지고 영순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초록색보다 약간 크기가 작은 핑크색 탱탱볼을 들더니, 갑자기 과도를 가져오라고 난리를 친다. 사관 줄 알고 깎아먹으려 그랬나 보다. 


그랬다. 영순은 이미 뇟 속 인지 능력이 거의 지워져 버려서, 자신이 온 몸으로 기억하는 행동 패턴을 통해 찰나의 기억을 더듬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늘 멍 때리고 있다가 어떤 사물이 자신의 곁에 다가오면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영순이 정신이 멀쩡했을 때는 인텔리였나 보다. 그녀는 늘 책 비스무레한 무언가를 꾸깃꾸깃 손에 쥐고 다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찰나를 느끼며 살다가, 어느 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 그녀는 하늘로 떠났다. 오랜만에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봤다. 그녀는 아마 나랑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겠지만, 어쩌면 하늘에 올라가서 멀찍이 던져두었던 기억들을 다시 주워와 나를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치매와 같은 정신 질병은 사람의 뇌가 자신의 괴로움으로부터 스스로 방어를 하기 위해 셧다운을 내리는 거라고 한다. 하늘나라의 영순씨는 땅을 걸었을 시절 밟았던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롭길 바란다. 초록 도마뱀의 마녀, 광기의 마녀 파이가 미쳐있는 것도 어떤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다. 그것이 그를 더이상 도륙하지 않고 멈추어 평온해지길 바랄 뿐이다.

211001  타다시 SAYS

<바른생활 메리골드> _211001 ㅌ의 마녀일기Nonc
00:00 / 11:56

바른생활 메리골드

No.35.8 by Nonc


 

ㅌ의 마녀, 타다시는 장학의 마녀라고도 불린다. 그는 그야말로 화이트 위치 포레스트 마녀 학교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며, 공부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잘 했다. 마녀가 아닌, 인간의 성격으로서 보면, 그는 분명히 학생회장 감이다. 성실하고, 침착하다 못해 깐깐하다. 때문에 어떤 일을 주도면밀하게 리드하는 것에 능하다. 또한 그는 뛰어난 협상가여서 마녀 학교의 대외적인 업무를 책임지고 맡고 있다. 그의 다방면에서의 유능함 때문에, 교장 마녀는 그가 졸업하던 해에 그를 학교에 붙잡아 묶어두느라, 꽤나 애를 쓴 모양이다. 비록 사회에 나가서는 그 어떤 마녀들보다 빼어난 수행 능력을 보이지만, 학생 시절에 그는 나름대로의 딜레마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똑똑하고, 일처리 잘 하면서 학생회장 감으로 손색이 없는 그인데, 정작 그가 마녀학교를 다니는 7년 동안 학생회장을 도맡아 한 사람은 바로 그와 같은 에메랄드 그린 챔버의 동기인 ㅅ의 마녀 ‘솔'이었다. 

 

솔은 겉보기에는 말랑말랑하고 유해 보이며, 심지어  다른 마녀들의 잡다구리한 일을 시도 때도 없이 돕기 때문에, 그를 볼 때면 언제나 무언가 지쳐있어 보이지만 어느 틈새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하거나 하는지, 7년 동안 마녀 학교의 수석은 명석쟁이 ‘타다시'가 아니라, 늘 ‘솔'이었다. 그래서 타다시는 알게모르게 ‘솔'을 의식하곤 했다. 마치 모차르트 옆의 살리에르일까? 타다시는 본인이 그렇게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자신이 왜 늘 ‘솔'보다 한 끗이 부족한지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그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 본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알고 있다. 그는 너무 깐깐한 나머지 완벽주의에 가깝고, 그때문에 지루한 바른생활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지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가진 선천적 거만함에서 나온다. 그가 사람들을 대할 때를 보면, 늘 친절하고 점잖게 굴기 때문에 잘 캐치하지 못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혼자 있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본다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어느 평일 오후에 마녀 학교가 2주간의 초가을 방학이라 학교가 텅텅 비었을 때, 학교 뜰 건너편의 나무 마루에서 타다시가 혼자 티 테이블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ㅍ의 마녀 파이가 몰래 지켜보게 되었다. 파이 입장에선 몰래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는 전날 나무마루 뒤쪽 돌더미에서 ㅋ의 마녀 키르케가 먹다가 비리다고 쥐어준 와인 한 병을 받아서 마시고는 그냥 곯아떨어졌나 보다. 그 다음날 오후에 중천의 내리쬐는 햇살에 깨어보니, 바로 너머에서 타다시가 앉아 있었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 행동들이 묘하게 이상해서,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주도면밀하기로 소문난 타다시가 티 테이블을 하는 동안은 주변에 파이가 있음에도 전혀 의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릴레방심한 탓일까, 아니면 파이가 하도 예측불허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파이의 말에 의하면 타다시는 신경증 장애가 있는 것처럼 희한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타다시가 메리골드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그의 타이즈 색깔도 메리골드색이다.  녹색 머리띠부터, 골드 버튼 셔츠와 서리 나무껍질로 만든 넥타이까지 항상 마녀 학교 교복을 정석으로 갖추어 입지만, 유독 타이즈 색상만 마녀 학교 전통의 푸른 암벽 빛이 아닌, 그가 좋아하는 메리골드를 닮은 짙은 노란색이다. 마녀 학교에서는 타이즈만큼은 마녀 각자의 개성을 뽐내라며 풀어두었기 때문에, 그가 무슨 색깔 타이즈를 입든 크게 상관은 없다. 다만, 그가 예전에 화이트 위치 포레스트 마녀 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뿔 도마뱀의 가죽으로 만든 녹색 리본 머리띠를 착용함에 있어서 분개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의아하긴 하다. 타다시가 왜 남자 마녀에게도 머리띠 같이 여리여리한 것을 착용하게 하냐고 크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그가 샌님 같은 겉모습과 달리 멘탈은 상남자인 건지, 일부로 그런 척하는 건지 모르지만, 이것은 남자 마녀들에 대한 큰 차별이라며, 낡은 전통을 바꾸어야 한다고 유독 그 부분에서만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마녀들은 그가 엄청난 기세로 교장 마녀실 앞에서 일인 시위라도 벌일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툴툴거리기만 하면서도 절대로 머리띠를 벗지는 않았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ㄹ의 마녀 르네가 갑갑하다고 쉬는 시간에 점심 도시락 까먹으면서 훌러덩 벗어버리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그렇게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결국엔 정석과 전통에 얽매여있는 그에게 다른 마녀들은 천상 모범생, 혹은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탁 튀는 노란색 타이즈를 착용하고 왔을 때, 모든 마녀들이 기겁을 했다. 그것은 그가 마녀 학교 3학년 때의 일인데, 주말 바캉스로 메리골드 숲에 놀러 갔다가 왕벌에 크게 쏘이고 드러누운 지 열흘 만에 다시 학교에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파이가 지켜본 그날도 타다시의 티 테이블은 메리골드 차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의 성격을 꼭 빼다 박은 듯 비이커 모양의 투명한 계량기에 말려서 탱글 한 호박색을 띠고 있는 메리골드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것을 우려낸 메리골드 차가 와인잔에 담긴 채 햇빛을 머금은 영롱한 노란색을 뿌리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유행이 몇 해나 지난 우유 케잌이 테이블 한 편에 놓여있었고, 구운 호밀 식빵과 그것에 곁들여 먹으려는 듯 메이플 시럽이 있다. 또한 ‘사유’와 ‘음악'에 관한 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검정 금장 도서 위에 놓여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 양초는 기본이다. 티 테이블은 감청색 천 위에 조심스럽게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침착한 성격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벌어질 신경질적인 행동들은 차마 알지 못 하는 듯했다. 

 

그가 메리골드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바로 포도이다. 와인을 직접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아마 그는 술을 입에 대지는 않는 것 같지만, 포도만큼은 확실히 좋아한다. 한 번에 두 알씩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는 그의 모습을 보면, 포도의 신 바쿠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예전에 ㄴ의 마녀 농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타다시가 포도를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이유는, 그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자동차에 주유를 하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그의 뇌 회전을 지속시키기 위해 포도만큼 훌륭한 연료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것이 그의 취향이든, 식탐이든, 연료이든 간에 빠른 속도로 한 송이를 먹어치운다. 재밌는 것은 그는 꼭 포도를 먹을 때마다 일본식 증류주를 따르는 작은 소주잔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 껍질을 그 잔에 차곡차곡 넣는 습관이 있는데, 누군가의 추측에 따르면 그것은 아마도 미관성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포도 껍질을 보게 되는 순간, 먹기 싫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작은 잔에 예쁘게 담아둔다고 한다. 포도에 관한 타다시의 집착은 하나가 더 있다. 그는 다 먹은 포도 심을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마치 전리품인 양 보관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 무슨 의미 따위가 있겠는가. 하지만 미관성을 그렇게나 따진다는 그가 모은다길래 다시금 포도 심을 바라보니, 새삼 아름답게 보인다.

 

파이가 전한 얘기 중에 가장 웃긴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자작나무 촛불에 촛농이 많이 고였나 보다. 그래서 도중에 불씨가 꺼졌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갑자기 나도밤나무 밑으로 가더니 굴러다니는 밤송이를 하나 집어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한 송이를 들고 왔지만, 집을 때 이미 여러 손가락 깨나 찔린 모양이다. 자신의 애지중지하는 검정 가죽 금장 도서에 화들짝 내려놓더니, 바로 그 위에 촛농을 쏟기 시작한다. 당장은 그의 표정이 시익 번지며 기쁜 듯 보였다. 그러다가 바로 표정이 일그러져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뾰족뾰족한 밤송이 위에 그대로 굳어버릴 줄 알았던 촛농이 주르륵 흘러내려 자신의 그렇게도 아끼던 검은 도서 위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어찌할 줄 모르고 밤송이로 그것들을 닦아내려고 했지만, 뾰족한 부분이 먼저 닿게 되니까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촛농은 도서 위에서 서서히 굳어버렸다. 아마도 따가운 밤송이에 촛농을 부어서 만져도 찔리지 않게끔 만들려고 한 모양인데, 생각은 그럴싸했으나 촛농 굳는 시간을 생각 안 하다니 이럴 때 보면 ‘타다시'도 멍청한 구석이 있어, 의외로 마녀답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처럼 정확하고 올바르기만 한 옹고집 기계일 줄 알았는데… (*바를 정을 일본어로 타다시라고 읽으며, 정확함 올바름 정도의 뜻을 담고 있다.)  지루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이런 그의 모습은 놀랍도록 흥미롭다. 이쯤 되면 어렸을 때 그의 엉덩이에 왕침을 놔준 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토록 완벽과 올바름만을 고집하는 그에게 흠집을 낸 다음, 그 틈새에 메리골드를 심어주었으니 말이다.  

211002  츄나미 SAYS

<미쯔메아우또> _211002 ㅊ의 마녀일기Nonc
00:00 / 18:49

미쯔메아우또

No.35.9 by Nonc


 

일본어는 거대한 산이었다. 발음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아 카 사 타 나 바 마~로 흐르는 일본어 50음도는 행과 단의 날실과 씨실로 겹겹이 짜며 져 있는데, 보통 자음 행이 모음 단 ‘아이우에오’로 이동할 때에 단순하게, 빈 자음 이응의 자리에 각 행의 기본 음가가 들어가는 식이다. 예를 들어 마행은 모음 단과 만나서 ‘마미무매모’가 되고, 하행은 ‘하히후해호’가 된다. 여기서 유일하게 타행의 ㅌ만이 모음 단과 만나 희한한 변형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다음과 같다. “타치쯔테토”. 편의상 한글로 쯔 혹은 츠라고 표기할 수밖에 없는 타행의 세 번째 단은 사실 한글로 대체할 수 없는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음가 중 하나이다. 영문으로 Tsu 라고 표기되는 데, 이것조차 정확한 표기라고 할 수 없다. 

 

  일본어 쯔에 해당하는 문자의 생김새만 봐도 독특하다. 한 획으로 이렇게 기가 막힌 곡선의 밸런스를 잡은 한 단위의 문자가 또 어디 있겠는가. 이 꼬부라진 뱀의 머리인지, 노려보는 고양이의 굽은 등을 닮은 건지, 유연하게 휘어있는 쯔의 생김새가 사실은 이 발음의 실마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유학 생활 1년 동안 이 발음으로 갖은 고초를 다 겪고 나서의 일이다. 

 

‘귀음’은 레게 뮤지션으로 귀가 엄청 밝았는데, 그 덕택인지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습득하여 자연스럽게 영어, 일본어를 할 줄 안다. 물론 외국어 하나 익히는 데에 그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그가 무언가를 귀 기울일 때에 집중하는 표정을 보노라면, ‘이 친구는 타고났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이미 당시에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일본 뮤지션들과도 교류하고 있는 귀음에게 이 원초적인 유학 1년 차의 고민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그는 함께 마신 청하 아홉 병 끝에 원 포인트 레슨으로 한 방에 나를 이해시켜 버렸다. 

 

“입안에서 혀를 마치 저 쯔의 형상과 같이 말아서 아래쪽 앞니 안쪽으로 강하게 밀착 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우단임을 명심하고, 입술의 모양을 우로 한 채로 힘을 빼고 툭 뱉는다.”  

 

그렇게 하니까 츄~하고 뽀뽀하는 것처럼 민망한 입모양과 함께, 쯔와 츠와 쮸 사이의 묘한 바람 새는 소리가 나면서, 비로소 나의 쯔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지난여름 대학교 ‘사진부' 친구들과 함께 간 ‘갓슈쿠(일본에선 한국 대학의 엠티를 합숙이라고 부른다. 갓슈쿠는 합숙의 일본식 발음이다.)에서 일본의 국민가수 사쟌오르스타즈의 명곡 ‘츠나미'를 불러버린 것이다. 츠나미,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해일을 뜻하는 일본 말로, 호쿠사이의 유명한 그림 <카나가와 바닷가의 높은 파도>에서 묘사된 파도의 모습이 아마 이 단어의 대표하는 심상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개그맨 지상렬 씨가 자신의 유행어 ‘안구에 습기가 찬다'를 좀 더 과장되게 표현하여 ‘안구에 쓰나미'라는 말로서 퍼트렸다. 여기서 일본어 쯔의 발음은 편의상 ‘쓰’로 대체되었다. 쯔나미란 단어를 전 세계에 알린 사건은 바로 2011년 끔찍한 자연재해였던 311대지진일 것이다. 이때 지진으로 형성된 초대형 츠나미가 일본 동쪽 연안을 쓸어버렸고,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버리면서 방사능으로 빚어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아니 찢어버렸다. 쯔나미는 전 세계가 아는 느리지만 깐깐하고 그만큼 정교한 확실함으로 보상하는 일본 사람들의 이미지와 신용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고, 십 년의 시간이 흘러, 한 해 늦어진 도쿄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도 푹 꺼져버린 그들의 위상은 회복되지 못 한 채 서서히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호쿠사이, 안구, 대지진과 별개로 내 삶에 찾아온 쯔나미는 바로 일본 노래의 곡 이름이었는데, 사진부 친구들과 함께 한 일생 첫 대학교 엠티에서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불렀던 이 노래는 생각보다 잘 불렀던 모양인지, 쇼타를 비롯한 나의 친구들에게 강하게 각인되었다. 얼마 전에 십 년 만에 통화한 쇼타조차도, 쯔나미나 코부쿠로가 나의 이미지라고 했을 정도니. 아, 쯔나미가 아니라 츄나미다. 이때는 아직 문제의 쯔 발음을 익숙하게 하지 못한 탓에, 노랫말에서 쯔나미를 츄나미라고 불러버린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 이후 귀음의 도움으로 발음을 교정하게 되었어도, 가라오케 - 일본식 노래방 만 가면 친구들이 “이쿤 츄마니 츄세요”라고 하는 통에 그때마다 쓴웃음을 짓곤 한다. ㅊ의 마녀의 이름 ‘츄나미'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ㅊ의 마녀 ‘츄나미'는 통칭 레이어의 마녀. 무엇이든 겹겹이 쌓아 겹쳐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일단 검정색 시크와, 분홍색 교태의 전혀 이질적인 두 가지 옷을 동시에 겹쳐 입는데, 옷뿐만 아니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슬그머니 겹쳐놓고 가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다. 그녀는 타고난 디자이너라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러한 편집에 능하다. 이미지 편집이나 공간 배열은 물론 그 까다로운 ‘글자'의 맵시를 다루는 능력 또한 대단하다. 서른다섯을 즈음하여 그녀의 ‘레이어 능력’은 단순하게 시각적 형태를 편집하는 것을 넘어서 잡히지 않는 것들을 편집하는 경지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잡히지 않는 것이란 물질성이 없는 것들 생각, 상상, 관념, 분노와 같은 감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사랑도 포함한다. 

   그녀가 고안해낸 이 새로운 기술을 ‘레이어 카빙'이라고 부르며 그녀의 혈흔으로 만든 금빛 갈기털 붓으로 시공의 양피지에 휘갈겨 써 내려가는데,  그때마다 대단한 정신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대단한 편집 능력이 때때로 폭주하며, 겹쳐지지 말아야 할 것을 겹쳐 놓는 통에 그녀가 사는 마을 사람들이 이따금씩 곤욕을 겪기도 한다. 한창 수확할 시절에 경운기 바퀴에 제트 스키를 겹쳐 놓는 통에 뿔난 농부 아저씨가 농가의 한쪽 벽면에 놓여있는 갈퀴를 집어 들고는 삼지창 마냥 그녀에게 던져버렸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에도 쏜살같이 날아오는 갈퀴와 점심 무렵이라 그 옆에서 하고 있던 통돼지 바비큐를 겹쳐버리면서, 통돼지 꼬치구이로 만들어 놓고는 들고 도망가 버렸다. 

  하루는 어떤 소설가가 자신의 글이 도저히 풀리지 않게 되자, 레이어의 마녀 ‘츄나미'를 찾아와 하소연했다고 하는데 그때 그녀가 건네준 것이 바로 ‘겹침의 시약'이었고, 그것을 마신 소설가가 모든 기억이 하나로 짬뽕되어 겹쳐버리는 바람에 미쳐버렸다고 한다. 츄나미는 소설가가 시약과 함께 쥐여준 레시피대로 복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지만, 한번 그 사건이 터진 이후로 츄나미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뛰어난 편집자를 넘어 편집 중독자가 되어버린 츄나미의 유일한 취미가 바로 ‘요리’다. 

  그녀의 요리 실력은 훌륭하다. 몇 해전 그녀가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간 일본의 한 사원에서 새로운 형태의 닭고기 스프를 개발했는데, 청경채와 올리브유와 고추장을 곁들인 이 스프를 보고는 채식을 원칙으로 하는 수도사들조차도 군침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한 수도사는 야밤중에 몰래 그녀가 끓여 놓은 닭고기 스프를 먹는 통에, 사원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한다. 사원의 주교들이 채식의 율법을 깨버린 그를 심문하기 시작했고, 그는 온갖 변명을 동원해서 겨우 파문을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붙여진 츄나미가 만든 닭고기 스프의 별칭이 바로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였다고 한다. 이 말은 실제로 심문회의 보고서에 기록되었으며, 그렇게라도 살을 붙여서 사원의 정통성에 난 흠집을 가리고자 했다.

 

   오늘도 츄나미는 놀라운 메뉴를 창조하게 되었다. 부스스 일어난 아침을 가볍게 때우려다가 요리에 몰입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호밀빵으로 토스트를 한다. 렌지를 가열하여 스크램블 에그를 한다. 달걀은 두 개다. 두 개나 스크램블을 하니, 뭔가 그럴싸한 소스가 필요했다. 하지만 캐첩이나 두반장은 따로 없었다. 냉장고에 고추장이 있는데, 고추장을 스크램블 에그와 토스트와 함께 먹으려니 뭔가 어색해 보인다. 일단 함께 먹기로 생각한 낫또를 휘휘 저어, 토스트 위를 덮은 스크램블 에그 위에 한 폭 더 겹쳤다. 그리고 이제 소스만 만들면 된다. 찬장에 올리브유가 있다. 올리브유와 고추장의 조합은 그녀의 손에서 이미 검증된 바가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 스크램블 에그와 토스트를 관통시킬 무언가 획기적인 게 필요하다. 토스트는 보통 메이플 시럽을 발라 먹는다.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가 겹쳐져 있다. 고로 메이플 시럽과 고추장 올리브 소스를 겹친다. 이때에 핵심은 이것들을 버무릴 용기인데, 바로 낫또를 덜어내고 텅 빈 아니 텅 빈 줄 알았던 낫또 용기다. 여기에 감으로 적당히 배합을 하고, 낫또를 비비는 것처럼 소스를 비빈다. 그러면 낫또 용기 표면에 남아있는 낫또의 끈적끈적함까지 섞이게 되면서, 제법 그럴싸한 물엿 같은 주홍색 소스가 탄생한다. 메이플 시럽의 효과는 대단하다. 매콤한 고추장을 확 잡아버리면서 단짠이 완성되는데, 이것이 질리지 않는 이유는 올리브유 특유의 향미가 뒷맛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완성된 소스를 토스트와 스크램블 에그와 낫또가 겹쳐있는 위에 한 번 더 겹친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츄나미류 특제 모닝 낫또 에그 토스트다.

 맛있겠지. 정말 맛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직접 만들어 보길 권한다. 하지만 이 레시피의 비밀은 지켜줬으면 좋겠다. 주방을 마주한 츄나미의 번뜩이는 몇 초간의 아이디어가, 고급 레스토랑의 유명 쉐프가 몇 년간 고심 끝에 완성시킨 특제 레시피로 둔갑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메가 히트곡 ‘쯔나미’는 사쟌오르스타즈의 명품 보컬 쿠와다 케이스케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2000년대 초반에 활약한 국민 아이돌 히로스에 료코가 주연한 드라마 <모토 카레>의 삽입곡이다. 드라마의 제목이 뜻하는 바처럼, 쯔나미와 같은 외로움이 몰려오는 날에 ‘옛 연인’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다. 노래의 클라이맥스에 쿠와다 케이스케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감정에 몰입한다.

 

“미쯔메아우또 스나오니 오샤베리 데키나이”

마주 보고 있어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사랑의 속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설렘의 순간도, 상처의 순간도 마주 보는 그때에 바로 전달해야 했을 것을 우리는 머뭇거리며 뒤로 미룬다. 그것이 너무나도 강렬한 사랑의 마비일 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섭섭하게 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한 괴로움일 수 있는데, 그렇게 사랑이란 마법에 의해 강력하게 겹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은 자연이 아닌 것인가. 자연의 스스럼없는 포용력 앞에서 자신의 어느 부분을 들춰내며 솔직해질 수 있었는데, 어째서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 승화되어 탄생하는 사랑의 속성이 솔직함을 밀어낸단 말인가. 

 

인간이란 각자의 욕망의 방향이 서로 달라, 그것이 아주 미세한 차이일지라도 완벽하게 겹쳐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사랑의 묘약이 츄나미의 기술처럼 겹쳐질 수 없는 두 존재를 겹쳐버렸을지라도, 겹쳐진 만큼 반발력을 가지고 밀어내는 것 또한 함께 있는 것이다. 눈과 눈을 서로 마주하고 있어도, 솔직하지 못하는 것. 끝끝내 솔직할 수 없는 어떤 조각을 마음 깊숙이 파묻어 두는 것. 솔직함만으로 사랑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저 외로움이 빗발같이 몰려치는 공허한 해안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어 고백하며 불빛을 뿜어내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드러낼 수 없는 무언가를 그저 말없이 서로 감싸 안아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완성이라는 것을. 그 두 가지 속성이 겹친 끝에서야 우리는 진실로 마주 보고 설 수 있었다는 것을. 츄나미의 기발한 토스트와 오후의 햇살 그리고 추억의 노래 끝자락에 서서 회상해 본다. 

ㅍ의 마녀일기
ㅌ의 마녀일기
ㅊ의 마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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