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 witch In Pine forest
210927 솔 SAYS
십년
No.35.3 by Nonc
40세에 목표가 무엇인가?
프로페서 R이 나에게 물었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결혼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벙쪘다. 서른 중반이 꺾여가는 나이에서, 벌써 4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것이다. 서른다섯은 예전부터 미술작가의 무덤이었다. 보통 서른다섯을 기준으로 신진 작가와 그렇지 않음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레지던시를 비롯해 서른다섯을 전후하여 지원할 수 있는 사업들이 서서히 끊기기 시작할 즈음이다. 커머셜 갤러리라고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들 또한 새롭게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아이돌 같은 작가를 찾고 있다. 그래서 그 시절 교니 누나는 그렇게 아팠나 보다.
“박사를 졸업하는 데 친구들은 결혼해서 애도 낳고,
나는 아직 사이제리아 신세야.”
사이제리아는 일본의 저가 페밀리 레스토랑이다. 학원 도시 교토에선 사이제리아에서 학생들이 끼니를 때우는 일을 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당장은 와닿지 않는 푸념으로 나 역시 곧 겪게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 무렵에 벌써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그것이 벌써 십 년 전의 일이다.
해와 달, 산과 물, 돌과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들을 일컬어 열 가지 장수물이라고 하여, 십장생이라고 부른다. 자연을 숭배하는 중국의 신선 사상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십장생이란 말은 오래토록 변함 없는 것으로, 숭고함 - 서브라임 즉 최고의 미학의 경지이다. 숭고를 넘어 숭배까지 해야 할 이 단어를 어린 시절 우리는 발음이 유사하다 하여, 종종 17과 19 사이에 있는 그것을 연상시키는 ‘욕'으로 많이 썼다. 제왕들이 자신을 낮춰 부르는 말로 짐, 과인(남편을 잃음), 불곡(농사를 못 지음) 따위의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십장생이란 최상급 숭고미 또한 발음이라도 17과 19 사이에 있는 그것과 어울리며, 스스로 자신을 낮추었단 말인가. 왕이 제아무리 자신을 낮춘다 하여 그 지체 높음이 달아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십장생이 발음상의 이유로 천박한 비속어가 된다 한들, 원래 가진 그 불변의 아름다움이 퇴색되는 것 역시 아니다. 그리고 이 십장생 중에,, 소나무도 있다.
ㅅ의 마녀 ‘솔'의 이름은 소나무를 뜻하는 순 우리말 솔에서 왔다. 솔과 나무, 두 단어가 만나 ㄹ이 탈락하여 소나무가 되었으니, 소나무가 곧 솔이다. 그래서 솔의 복식은 초록색 시원한 여름 소재의 점프수트로 하게 되었다. 그 안에 내가 눈 돌아갈 정도로 좋아하는 코발트블루와 번트시에나가 적절히 배합된 실크 블라우스의 조합으로 정했다. 상의와 하의가 하나로 붙어있는 걸 점프 수트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보통 패션에서는 여성 의류에서 많이 사용한다. 약간 고가의 시크한 디자인들이 많다. 일본어에도 상의와 하의가 하나로 붙어있는 의류를 부르는 말 ‘쯔나기'가 있다. 쯔나기가 연결하다는 뜻의 ‘쯔나구’의 명사형이라, 상의 - 하의가 연결돼 있다는 의미로 이런 종류의 옷을 통칭하는 말이 된 듯하다. 일본에서 또한 쯔나기가 점프수트와 같은 의미로 여성 의복에서 많이 쓰이지만, 또한 작업복으로서의 비중 역시 크다. 나도 교토의 대학원 시절에 처음으로 쯔나기를 사서 입었다. 하늘을 닮으려 소라색이랍시고 샀지만, 실상 자연스런 소라색이라기 보다는 CMYK의 C에 해당하는 Cyan에 더 가까웠다. 작업복의 특성상 위험한 장비를 다루거나 위험한 곳에 있을 일이 많기 때문에, 빨리 눈에 띌 수 있도록 인위적이라도 요란한 원색에 가까운 색상들이 많았다. 내가 다니던 우류야마의 산자락에 걸터앉은 예대에는, 학생들 각자의 개성을 반영한 총천연색의 쯔나기들이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다. 솔을 위해 준비한 초록색 점프수트인데, 다행이도 이 색깔은 작업복 쯔나기들보다는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색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밝은 초록색인데, 새마을 운동의 깃발 색깔보다 살짝 더 밝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고, 고급 진 여성 패션 점프수트를 입은 ㅅ의 마녀 ‘솔'은 정작 새마을 운동처럼 마녀들의 살림꾼이었다. 다른 마녀의 옷이 눅눅해지지는 않을까, 햇볕에 말리는가 하면 동료 작가의 전시장을 함께 어루만져 준다. 그러다가 정작 자신이 걸친 옷은 땀에 축축하게 젖었다. 여름 린넨과 실크 소재의 옷 들인데 말이다. 그런 ‘솔'의 따뜻한 마음을 알았는지, 소나무 숲에 살고 있는 스물세 살 먹은 ‘반송’이 마녀들의 옷을 말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주었다. 십 년을 두 바퀴나 돌아도 변함없이 푸르른 소나무의 우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ㅅ의 마녀의 이름으로 처음 떠올랐던 ‘쇼타'는 일본 유학 시절 절친의 이름인데, 얼마 전에 우리들의 친구 ‘윳삐’가 드디어 장가간다고, 나에게 사진 축하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연락이 왔다.
쇼타는 지금의 일본은 내가 있었던 시절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내가 3년 전 요네다 켄시의 인기곡까지는 일본 문화 업데이트가 되어 있다고 하니까, 지금은 오히려 BTS를 중심으로 다시 한류가 번지고 있다고 한다. 오바상(일본 아줌마)을 중심으로 여전히 한류 드라마가 대세이고, (최근에는 태양의 후예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20대의 젊은 친구들에겐 한류 아이돌 붐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아이돌을 닮은 예쁜 남자들이 종종 거리를 활보하고 있어, 큰일이라고까지 말 한다. 내가 일본을 떠나온 지도 내 후년이면 벌써 십 년이 지난다. 그 시절 나의 귀국을 위해 ‘사요나라 파티'를 해주던 쇼타와 사진부 친구들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준 메시지 카드도 여전히 가지고 있고, 아주아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눠도 쇼타와의 우정 또한 그 시절 그대로인데, 일본이란 세상은 바뀌었나 보다. 대학교 2학년 내가 쇼타랑 처음 만났던 시절부터 나는, 우리들은 벌써 각자의 세상에서 십 년을 건너왔다. 그 시절 내 나이 스물셋의 일이었다.
미술작가로서 처음 전시를 연지도 벌써 십 년이 지났다. 내가 미술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발버둥 치는 십 년 동안, 나의 친구들 또한 사회생활 짬밥이 벌써 십 년 깨다. 누구는 퇴사하고 요식업을 하고 싶다고 하고, 누구는 이미 퇴사를 한 후에 이직할지 전직할지 고민하고 있다. 또 누구는 이미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여러 차례 성공을 맛보고 지금은 건강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어느 누구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직업을 몇 해 누린 다음에 절정의 행복을 맛본 후, 지금은 세상을 벗어나 있다.
십 년 째 회사들 다니다 보니 드디어 자기가 무엇이 맞는지 조금씩 알아가나 보다. 혹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잘 알고싶은 계기들이 생기나 보다. 그래서 이맘때 퇴사를 하거나, 이직을 하거나, 전직까지 한다고 한다. 전직은 처음 듣는 말인데, 자신의 커리어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자리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경력 대우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단다. 그야말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전직이나 창업 혹은 작가 생활을 시작할 정도로 십 년 사회생활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사춘기 오춘기 칠춘기도 아니고, 결혼과 육아를 마주한 혹은 비껴간 그들이 새롭게 ‘자기 고민’을 하고 있다.
미술 작가로서 살다 보면, 종종 친구나 지인한테 이런 얘기를 듣는다.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데…”
그들이 사회생활 십 년 할 동안, 나는 미술작가로서 십 년 동안 ‘자기 고민'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서야 자기 고민을 해보겠다는 그들에게 나 또한 이렇게 말해야 할 일일까?
“네가 자기 고민을 잘 안 해봐서 그런데…”
일본에는 이런 제도가 있다고 한다. 지역 문화 예술 단체가 십 년 동안 자기 돈 들여서 유지를 해 왔다면, 그때부터 지자체가 그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을 비로소 책정한다고 한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관에서 지원하는 제도가 없다고 들었다. 일본의 관 지원 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로 우스꽝스럽게도 기업 및 영리 단체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발달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관의 지원 시스템이 발달한 것과 확연히 대조적이다. 아무튼 이런 신선한 제도가 있었다니, 참으로 일본다우면서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십 년 했으면 많이 했다고 생각하여,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 사실 여러 분야에서 쉽게 눈에 띄는 전시 행정의 양태들을 보노라면, 십 년 조차 길다. 그래서 십 년을 버티고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한 내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대견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옆 나라에선 십 년을 버텼으니 이제 출발점에 서라고 한다.
40세에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막연하게 “잘 팔리는 작가?” 아니면 아직 와닿지 않는 구체적 계획을 빙자한 상상을 읊을 수는 있다. 일단 40세에는 십 년 동안 지속해 온 ‘자기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십몇 년 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유지하는 ‘쇼타’와 스물 세해 동안 변함없는 푸르름을 유지하는 저 ‘솔' 처럼 얼마 후의 관점이 아닌 불변의 아름다움을 두고 생각을 해볼 때에, 당장 며칠, 몇달, 몇 년 치의 구체적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왕을 짐이나 과인이라고 불러도 여전한 것처럼, 몇 가지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불변의 ‘자기 고민'을 가릴 수 없겠으니...
210928 쟌 SAYS 준비중!!
-
No.35.5 by Nonc
--
210929 키르케 SAYS '준비중'
키르케의 밤
No.35.6 by Nonc
--
Every website has a story, and your visitors want to hear yours. This space is a great opportunity to give a full background on who you are, what your team does and what your site has to offer. Double click on the text box to start editing your content and make sure to add all the relevant details you want site visitors to know.
If you’re a business, talk about how you started and share your professional journey. Explain your core values, your commitment to customers and how you stand out from the crowd. Add a photo, gallery or video for even more engagement.